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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동사거리 보람아파트 입구 도로에는 석장승 2기가 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 서 있다. 이 장승은 본래 이곳의 자연마을인 법천골 입구에 세워져 있던 것이다. 구전에 따르면 애초의 장승은 나무장승이었다고 하며 약 300년 전 이 마을의 갑부 송민노가 사재를 털어 지금의 돌장승을 세웠다고 한다. 돌장승은 남녀가 쌍을 이루는데 각각의 장승 전면에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과 지하대장군(地下大將軍)을 음각하여 정체를 밝히고 있다. 그리고 이들 장승 한 옆에 남근형선돌과 넓적한 모양의 선돌을 세워놓았다. 이들 선돌은 남녀장승과 어울려 아기장승으로 불리기도 한다. 아울러 남근형선돌은 풍요,다산을 기원하는 신물(神物)의 성격을 지니기도 한다. 남장승의 크기는 높이 160㎝, 몸통둘레 162㎝, 얼굴길이 40㎝, 얼굴 폭 35㎝ 이고 선돌은 높이 103㎝, 둘레 130㎝, 윗둘레 52㎝이다. 여장승도 남장승과 마찬가지로 화강암 기둥에 얼굴을 새기고 가슴에 지하대장군(地下大將軍)이라 명문을 새겼다. 크기는 높이 130㎝, 몸통둘레 143㎝, 얼굴길이 50㎝, 얼굴 폭 40㎝이며 선돌은 높이 80㎝, 둘레 130㎝, 윗둘레 66㎝이다. 이 마을의 장승제는 장승의 조성시기와 맞물려 그 유래가 매우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곧 조선후기로부터 제의가 유래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것이라고 전한다. 아울러 이 마을에서는 상당제의로 산신제를 지냈었다. 전통적으로 산신제를 시행한 이후 하당제의로서 장승제를 지냈었다. 그러던 것이 급격한 도시화 속에 자연마을이 해체되고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오늘날의 장승제만 보존되기에 이르렀다. 오늘날 법동의 장승제는 <법동 동우회>가 중심이 되어 시행한다. 법동 동우회는 애초 이곳에 터 잡아 살던 토박이 주민들의 모임이다. 이들이 중심이 되어 매년 정월 열나흘 저녁 7시 경에 장승제를 지낸다. 과거 제관은 생기복덕을 보아 엄격하게 선정하였다. 그런데 지금은 마을의 원로 가운데 한 분을 제관으로 선정하고 또 다른 한 분을 축관으로 가려 뽑는다. 여기에 동우회장이 유사가 되어 제의 전반을 기획하여 제사를 지내고 있다. 제의 당일에는 법2동의 풍물단이 마을과 제장 주변을 돌며 풍물을 울린다. 길놀이를 겸하여 장승제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다. 한편으로 동우회 임원들이 제장에 돼지머리, 떡시루, 과일, 포, 술 등의 제물을 차려놓는다. 이렇게 제의 준비가 이루어지면 제관과 축관, 구청장, 시의원, 마을 주민 100여인이 제장에 임한다. 이어 분향강신, 초헌, 독축의 순으로 제사를 지낸다. 초헌을 한 뒤에는 제의에 참여한 손님이나 마을 주민들이 차례로 나와 잔을 올리고 배례한다. 손님이나 주민 가운데에는 헌금을 하는 예도 있다. 이처럼 헌주 배례를 시행한 뒤에는 소지를 올린다. 소지올림에서는 집단이나 개인의 소망이 표현된다. 일반적으로 마을공동체의 안녕이나 액운 퇴치를 축문을 통해 기원한다면, 소지는 마을 주민 개개인의 직접적인 소망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 과거 법동에서는 제관이 대동소지를 올리고 난 뒤 각 가정의 대주소지를 올려주었었다. 이 외에도 군에 간 주민소지나 우마소지 등을 올렸었다. 지금도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소지올림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제관이 대동소지를 올리고 난 뒤, 소지종이를 제의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다. 그러면 소지종이를 받은 사람들이 직접 자신의 소망을 표현하며 소지를 올린다. <저작권자 ⓒ 뉴스충청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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