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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지방보훈청, 4월의 우리지역 독립운동가 윤봉길 의사 선정

김수환 기자 | 기사입력 2018/04/02 [13:17]

대전지방보훈청, 4월의 우리지역 독립운동가 윤봉길 의사 선정

김수환 기자 | 입력 : 2018/04/02 [13:17]


[대전=뉴스충청인] 대전지방보훈청(청장 강윤진)은 청소년 및 시민에게 애국선열의 위국·헌신정신을 알리고 보훈정신 함양에 기여하고자 ‘이달의 우리지역 독립운동가’를 선정한다고 밝혔다.

 

4월의 우리지역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윤봉길 의사는 1908년 6월 21일 충남 예산군 덕산에서 태어났다. 의사는 덕산공립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식민교육을 배척하며 학교를 자퇴하고 오치서숙에서 한학을 공부했다. 의사는 나이 19세부터 농촌계몽운동에 뜻을 두고 야학당을 개설하였다. 1927년에는 농민의 경제자립을 위해 독서회(讀書會), 1928년에는 부흥야학원(富興夜學院)을 설립하여 농민의 자녀를 교육시켰고 월례강연회(月例講演會) 등을 열어 신문화운동을 전개했다.

 

또한 월진회를 통해 농민의 단결과 민족정신의 배양, 그리고 애국사상을 고취하는 등 농촌운동을 정력적으로 전개하였으나 나라의 독립을 되찾기 전에는 일제의 압박으로 농촌운동이 성공할 수 없음을 깨닫고 1930년 3월 6일 중국으로 망명했다.

 

1931년 중국 상해에 도착하여 임시정부 국무령 김구 선생을 만나 자신이 소원하던 조국독립의 제단에 나서게 된다. 백범과 의사는 의열 투쟁의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하던 중 "1932년 4월 29일 일왕의 생일인 천장절을 일본군의 상해 점령 전승 경축식과 합동으로 상해 홍구공원에서 거행할 예정이다"는 상해 일일신문의 보도에 접하게 된다. 의거 3일전인 4월 26일 의사는 백범 선생이 주도하던 한인애국단에 가입하고 4월 29일 홍구공원에서 오전 11시 40분경 축하식 중 일본 국가가 거의 끝날 무렵 의사는 폭탄을 투척하였다. 이 의거로 백천과 하단은 사망하고 야촌 중장은 실명, 육군중장 식전은 다리를 절단하였으며 중광은 절름발이가 되고 촌정과 우야도 상처를 입었다.

 

일본군에 잡힌 의사는 가혹한 고문 끝에 그해 5월 28일 일제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1932년 12월 19일 26발의 탄환을 적성에 찬 가슴에 받아 순국하였다. 의사의 유해는 일제에 의해 쓰레기 처리장에 버려졌고 과옥후인 1946년에야 조국에 안장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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